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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by day

레시피님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결혼 전에 대나무숲과 자주 갔던 곳 중 하나가 강남역의 델리였습니다.
일본 오기 전에는 카레 맛도 좀 떨어지고 가격은 여전히 비싸서 안 간지 꽤 되었습니다만 이 집에서 겨울쯤에 한정으로 나오는 따뜻한 러시안 스프가 꽤 입맛에 맞았었지요.
일본에서도 작년 여름엔가 오다이바에 있는 푸드 코트에서 한번 먹어봤는데 그럭저럭 나쁘지 않더군요.

인터넷 서핑하다가 압력솥으로 러시안 스프를 만드는 레시피가 있길래 저장만 해두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만들어봤습니다.

과정은 크게 어려운 게 없었지요.
물과 고기 넣고 압력으로 한번 우린 다음 재료 쓸어다 붓고 다시 압력으로 우리기.
이게 다였는데 문제는 레시피에 적힌대로 물과 고기를 부으니 어쩐지 물이 좀 적어 보이는 겁니다. 1컵만 부으면 될 것을 왠지 좀 미진한 것 같아서 집에서 제일 큰 컵으로 1컵을 붓고도 반컵쯤을 더 붓고 시작했지요.
국물을 우린 다음 야채를 쓸어넣고 레시피에 적힌대로 토마토 주스까지 다시 1컵을 부었는데 역시나 이게 어째 야채만 한 가득인 겁니다.
고민하다가 일단 다 되고 나서 모자라다 싶으면 다시 더 붓자, 하고 가스불을 당겼지요.

뜸까지 다 들인 후 솥을 열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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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야채에서 물이 빠져나올 걸 감안 안했던 것이었더군요. -_-;
예상 이상으로 수위가 올라와서 맛을 보니 역시나 딱 아까 넣은 그 반컵의 물만큼 밍밍했습니다(결국 나중에 토마토 주스 반컵 더 추가해야 했음).
역시 초보 주제에 레시피님을 의심하는 건 위험한 짓입니다. -.ㅜ

어쨌든 간 맞추고 나니 그럭저럭 예전에 델리에서 먹었던 맛은 나는 것 같아 흡족하게 잘 먹어주었지요. 그냥 가스불로 끓이면 천만년을 끓여도 이렇게 푸욱 익히기 힘들 것 같은데 압력솥을 쓰니 시간도 덜 들고 편하더군요.
예전에 델리에서 나오는 걸 보면 양파도 썰지도 않고 그대로이고 야채 크기들도 엄청 큼직해서 특이하다 했는데 직접 해보니 야채가 워낙 물러져서 양파나 양배추나 아예 안 썰고 요리하는 게 결과물이 훨씬 깔끔하겠다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결국 재료 중에 정향을 못 구해서 그냥 만들었는데 다음번에는 마저 갖춰서 만들어봐야겠네요(슬슬 집안에 조미료가 없는 게 없는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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