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그 날이 밝았습니다.
이 날 아침에는 오라는 진통은 안오고 드디어 첫날처럼 새벽녘에 양수가 약간 샜더군요.
아침에도 내진 후 먼산을 바라보고 싶은 심정인 듯한 표정의 원장 선생님과 마주한 후 분만촉진제를 한두시간쯤 맞았는데 태아 상태를 체크하러 초음파 기계를 가지고 온 간호사가 아이 위치를 짚어보더니 '이 위치면 지금 아래층에서 정기 검진오는 산모들이랑 똑같네요' 라더군요. -_-; 왠지 그 말을 들으며 결국 수술을 하겠구나 예감을 했습니다.
11시쯤 다시 상황 체크.
결국은 수술 스케줄을 잡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자궁 입구는 2센티 이상 열리지를 않더군요..;
담당인 원장 선생님이 병실에 오시더니 반듯하게 무릎을 굽히고-병원에서 내내 한번도 의사가 환자를 내려다보며 설명한 적이 없었군요. 항상 눈높이를 맞추고 이야기를 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수술 일정과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만약의 부작용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긴급하게 감당하지 못할 사태가 일어날 경우에 반드시 무리하지 않고 큰병원으로 이송하겠다는 설명을 하나하나 직접 들었습니다. 한국식의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 책임 없으니 알아서 하셈' 이라는 서류에 무작정 사인을 하는 게 아니라 '너무 걱정할 것 없다'는 약간은 위로가 되는 의사의 말을 듣는 게 그나마 좀 기분이 낫더군요.
사실 애초에 일본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을 때는 수술은 전혀 감안도 안했던지라 대나무숲과 둘이 달랑 이역만리(?)에서 이런 상황에 부딪히니 힘들더라구요.
12시 좀 넘어서 원장 선생님과 부원장이 집도하는 수술시간이 잡히고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에서는 전신마취와 하반신마취 둘 중 선택할 수 있다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언니에게 들었는데 일본은 무조건 하반신 마취더군요. 전신마취를 하면 아이가 나올 때 자고 있는 경우(...)가 생겨서 일본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말은 곧 수술 내내 정신은 말짱한 채로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거 막상 겪으니 무지 복잡한 기분이었습니다.( '')
수술실에 들어가 마취 주사를 맞고 약이 돌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은, 벌거벗겨진 채로 누워 있자니 무슨 실험체가 된 듯한게 생각보다 오묘하더군요. 약 기운이 다 돌고 난 후 수술이 시작됐는데 처음 해본 마취라는 건 아무 감각이 없는 게 아니라 쥐가 난 것처럼 징~한 상태였습니다.
제 얼굴 앞쪽으로 천을 드리워서 수술은 볼 수 없도록 해놨는데 의식은 말짱하다보니 뭔가 '철퍽철퍽(...)' 소리만 들립니다. 게다가 오른쪽 팔에 놓은 링겔은 처음 놨던 간호사가 또 잘못 놨는지 애매하게 아파서 사실 수술 내내 그 오른팔이 아픈 것에 더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결국 중간에 '저기요... 좀 아픈데요...'라고 하니 수술하던 의사가 화들짝 놀라서 '네? 어디가요!'라고 하길래 '오른 손이....'라고 말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만... ^^;
수술 도중에 고마웠던 건 누군지 미처 볼 수 없었던 간호사분.
양팔을 십자로 벌린 상태인데 아무래도 긴장이 돼서 저절로 양 주먹이 꽉 쥐어 지더라구요. 그러고 있는데 어느 분이 옆에서 제 왼쪽 손을 펴더니 손을 꼬옥 잡아주는데 많이 고마웠습니다. 그 손은 누구였을까요.
언제쯤에나 아이가 나오나 싶을 때쯤에 처음으로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많이 걱정했는데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나더라구요.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모두 건강하다고 좋아하는데 그 말이 제일 반가웠습니다.
간호사분이 아이를 대충 닦아서 눈앞에 보여주는데 아직 눈도 안뜨고 감은 채로 있는 그 눈매가 대나무숲을 너무 쏙빼닮아서 '으헉' 했습니다. -_-;; 그리고 아이는 처치가 끝난 후 아빠에게로 보내주더군요. 그리하여 대나무숲은 병실에서 한시간쯤 어정쩡하게 갓 태어난 신생아를 안은 채(...) 이제나 저제나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고 합니다.( '')
아이가 나가고 수술 마무리에 들어간 듯한데 그때쯤 되니 두 의사분은 아주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며 마무리를 하시더군요..; 간간히 저한테 '어디 안 좋은 데 없는지' 체크도 해가면서 말이지요. 사실 막판쯤에는 하반신에서 약간 위쪽까지 마취 때문에 쥐가 난 것 같은 상태다보니 슬슬 숨쉬는 게 가쁘긴 했는데 이걸 말할까 말까 하는 사이에 수술이 끝났습니다.
결국 제 출산 경험이란 출산하면서 진통은 못겪어보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만 엄청나게 받는 기묘한 과정이었습니다.
이 시기도 그렇고 이후의 입원 기간도, 지금 돌이켜봐도 무엇보다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 상황에서 믿음직하게 의지가 되어준 대나무숲이 참으로 고마웠던 시간이었네요.
그리고 수술을 했기 때문에 그 뒤로 일주일간 병원에 있게 되었습니다만 이게 참 생각보다 '무모한 도전'이었다지요. 말이 100퍼센트 통하는 것도 아닌 공간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건 몸도 힘들 때 정말 이중고더군요.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건 병원 스탭들이 하나같이 모두 엄청 친절했던 데다가 소문대로 병원 음식도 맛있었고(진통 기다리는 이틀동안 밥조차 맛없었으면 정말 우울했을 듯) 아기나 산모를 보살피는 것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병원에서의 좌충우돌 일주일은 또 그 나름대로 소소한 이야기거리가 많았습니다.
왼쪽으로 젖 먹이는 게 편해서 한쪽으로만 먹였다가 오른쪽 젖이 굳어져서 밤새도록 조산사분들이 마사지해주며 풀어주는 일도 있었고, 수술 끝나고 입원에 들어가니 '다른 건 다 준비해주더니' 정작 입원 중에 입어야 하는 파자마는 본인 지참이어서 미처 준비를 못하는 바람에 병원에서 가운을 하나 빌렸더니 조산사 중 한분이 '정말 이상하게' 봐서 민망했던 일도 있었고, 수술 후 중간 검진 중에 말을 잘못 알아들어서 부원장과 조산사분을 '웃겨드린' 일도 있었지요.
마지막날에는 처음으로 혜린이와 밤새 함께 보냈는데-원래 모자 동실인데 산모가 힘든 경우는 너스 스테이션에서 봐주다가 아기가 젖을 찾을 때만 데려다줍니다-낮동안 젖만 먹이면 3-4시간씩 푹푹 자서 밤의 모습을 몰랐건만 밤이 되니 눈이 말똥해지면서 나를 바라봐 공포에 질리게(...) 했습니다(결국 밤새 수술 자국 부여안고 애 봤습니다. -_-;)
이곳 병원은 오후 2시~8시까지 면회시간 이외에는 보호자도 함께 있을 수가 없는데 그래서 어차피 같이 계속 있을 게 아니면 그 시간 동안 혼자서도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었습니다만 대단히 가소로운 생각이었지요. -_-; 엄마가 안와줬더라면 정말 도중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 같아요.
뜬금없이 일찍 나오긴 했지만 그 덕에 친정 엄마도 오실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는 그럭저럭 해피엔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틈틈이 신기해서 찍어놨던 병원식사들..;
메뉴도 정말 다양한데다가 맛도 왠만한 레스토랑보다 나아서 감동했더랬습니다(밥 때문에 병원을 고른 보람이 있었군요). 그래도 역시 애 낳고 나니 미역국에 말아먹는 밥이 제일 잘 넘어가긴 하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