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됐든 내용은 아주 지대로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서 죽는 순간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시간순으로 서술해나간 전형적인 전기였는데 읽다보니 책 무게가 좀 괴로운 것 빼고는 흥미진진하더군요.
흔히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 서술할 때 언급되는 영국의 황금기, 또는 여왕 본인의 호걸성은 역시나 시대가 흐른 후 '역사가 평가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은 전기 형식이다보니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그 당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들었던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환상적이지도 않은 데다가 갑갑하기까지 합니다.
후세에서 평가하기에는 '황금기'이지만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지금을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경기'였고, 그렇게 재정적으로 풍족한 왕실을 꾸렸다는 엘리자베스 여왕 역시 항상 재정난에 시달렸더군요.
열강의 한 가운데에서 눈치를 보느라 읽는 사람이 머리가 지끈할 정도였고 그 와중에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를 떠안는 바람에 호시탐탐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그녀를 견제하느라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중년이 될 때까지 의회는 '결혼을 하라'고 여왕에게 압력을 넣었으나 제가 보기에도 대체 저 와중에 언제 결혼은 할까 싶을 정도로 여왕을 제대로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_-;
읽다보니 마치 이문열의 삼국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수많은 적을 물리쳤다~' 라고 서술한 다음 이문열이 '실은 그 수많은 적이 별로 많지 않았다더라' 라고 토를 다는 것처럼 이 책에서도 그 당시에 엘리자베스 여왕도 항상 재정적인 궁핍에 시달렸다, 라고 하고는 '그래도 뭐 다른 왕들에 비해서는 양호한 것이었다'고 하는 식입니다.
웅장하고 호쾌한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추천할 수 없는 책입니다.
그래도 워낙 인간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서술해서 여왕의 인간미는 오히려 더 잘 살아 있습니다. 흔히 생각했던 것처럼 여걸의 모습이 아니라 갑갑할 정도로 의심많고 소심합니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자신을 '여성의 악한 습성을 가지지 않은 남자의 심장'이라고 주장하다가 우유부단해질 때는 '내가 여자니까 그렇잖수' 하고 스르륵 방어막 치는 모습이 죽이더군요.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애인일지라도 절대 한없이 다 주지 않고 얼르고 뒤통수 쳐가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애완견일 뿐'이라고 하는 걸 보면 그래도 당시의 여성 치고는 역시 보통이 아니긴 하지요.
결론은, 영화를 보고 피상적으로 궁금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풀어주는 책이었습니다. ^^ 영화와 역사적 사실을 비교하는 재미도 꽤 쏠쏠했고 말이지요.
ps. 보면서 괴로웠던 것은 역시...
영국 사람들은 그렇게 자식 이름 짓는 센스가 없단 말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_-;
여자 이름은 죄 메리, 캐서린 아니면 엘리자베스인데다가 남자들 이름은 전부 아버지와 같아서 '** 공작 아들 이름도 **'인 식이니...-_- 나중에는 이 **가 아비 **인지 아들 **인지(...) 헷갈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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